송국리유적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3-06-18 15:33:34         조회 - 1502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 유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수 차례 발굴하였고 지표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토대로 4~5㎢에 걸치는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대규모 취락유적임이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이 출토된 돌널무덤(石棺墓)과 함께 확인되었다. 유적의 입지 조건은 들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릉지역으로 적어도 100여 기 이상의 집자리(住居址)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마을을 둘러싼 환호(環濠)와 목책시설(木柵施設)이 확인되고 있다.

이 외에 송국리 유적에서는 백제·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때에는 처음으로 출현한 원형주거지와 송국리식토기 등으로 인하여 청동기시대 주거지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보고서도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에 대한 것만이 발간되었으며, 백제시대 유적에 대한 현상은 기록되지 못하여 대개 청동기시대의 유적지로서만 알려져 있다.

발굴에서 확인된 집자리 평면은 원형(圓形)과 장방형(長方形) 2가지가 있으며 원형이 많은 편이다. 원형 평면의 집자리는 화강암 석비레층을 깊이 파고 지었으며 장방형 평면의 집자리는 깊이가 얕은 편이다. 원형 집자리 안에서는 바닥의 가운데 부분에 길이 1.0m 안팎으로 타원형(楕圓形)의 구덩이를 파고 기둥구멍(柱孔)을 2개 만들어 놓았고 저장구덩이(貯藏穴)로 생각되는 구덩이가 있다. 화덕자리(爐址)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다. 집터 안에서 나온 유물들을 보면 토기,석기 등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토기는 흔히 ‘송국리식토기(松菊里式土器)’라고 부르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들과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석기는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화살촉(石鏃), 돌검(石劍), 가락바퀴(紡錘車), 돌도끼(石斧) 등이 있다. 특히 반달돌칼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이와 함께 불탄 쌀(炭化米)이 나와 청동기시대 쌀농사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유적의 연대는 B.C. 6~5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널무덤은 한반도에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이 출토된 무덤의 구조가 정식 조사된 최초의 유적으로 중요하다. 돌널무덤은 풍화암반(風化巖盤)을 파서 만들었는데, 지표아래 20㎝정도에 길이, 너비, 두께가 2.6×1.2×0.2m 정도의 장타원형(長楕圓形) 판돌(板石)을 덮고, 그 아래에는 35˚정도 서쪽으로 치우친 남~북 방향으로 돌널이 있었다. 돌널(石棺)은 머리쪽이 넓고, 발치가 좁은 두광족협식(頭廣足狹式)으로 길이, 너비가 2.05×1.0m의 장방형(長方形)을 하고 있다. 바닥에는 널의 폭보다 좁은 판돌 3매를 가로로 깔고, 그 사이를 작은 판돌로 덮었다. 네 벽은 판돌로 세워 조립(組立)하였는데, 높이는 0.8×0.9m 정도이다. 동·서벽은 4~5매, 남·북벽은 각각 1~2매로 구성되어 있다. 널의 내부에는 가는 모래와 자갈돌로 채웠으며, 유물은 바닥면에서 발견되었는데, 피장자(被葬者)의 왼쪽 발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비파형동검과 돌화살촉, 대롱옥(管玉), 장식옥(飾玉)이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출토된 동검을 보면 봉부(鋒部)에서 꼬다리(莖部) 끝까지의 길이가 33.4㎝로, 등날이 봉부의 선단(先端)까지 발달하고, 등대의 중간에 돌기부(突起部)가 뚜렷하다. 날의 돌기도 크고, 하반부 양측의 날이 둥글게 팽창하여 기부 가까이에서 최대폭을 갖는다. 꼬다리 끝 한쪽에 홈이 파 있는 전형적인 비파형동검으로 비교적 이른 형식이다. 간돌검 1점은 혈암제(頁巖製)로 등날이 선단부터 자루 끝까지 이어지므로, 검신(劍身)과 자루의 단면이 모두 마름모꼴인 일단병식(一段柄式)이다. 전체 길이 34.1㎝로, 직선에 가까운 날 곳곳에 마멸된 흔적이 있다.

돌화살촉은 11점 출토되었는데, 모두 몸의 단면이 마름모꼴인 유경식(有莖式)으로 슴베 단면은 육각형이고, 기단부(基端部)가 뾰족하다. 날의 중간쯤에서 양날이 살짝 각이 지면서 아래 단으로 평행하게 다듬어진 것이 특징으로, 전체길이가 10.3~19.9㎝ 정도로 긴 편이어서 비실용적이다. 이밖에 대롱옥은 17점 출토되었는데, 벽옥제(碧玉製)로 표면이 잘 마연되었고, 굽은옥은 2점으로 천하석제(天河石製)이다.

송국리 유적의 집자리에서는 부채꼴 모양의 도끼(扇形銅斧) 거푸집(鎔范)이 확인되었는데, 이 형식의 도끼와 비파형동검이 공반출토된 예가 요하유역에 있다. 따라서 비파형 동검이 출토된 돌널무덤과 송국리식 민무늬토기가 출토되는 집자리는 같은 시기의 동일 주민집단의 소산으로 인정된다.

백제시대의 고분으로는 독널무덤(甕棺墓)과 움무덤(土壙墓)이 있다. 독널무덤은 40·56·68지구에서 각각 1기씩 발굴되었다. 이 중 40지구의 것에서는 정확한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구체적인 매장방법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다만 포탄형의 토기 3점, 자배기 1점이 확인되어 이것이 독널무덤에 사용된 토기로 추정되고 있을 따름이다. 56지구의 것은 이음식(合口式)독널무덤으로 일상생활에 이용하던 2점의 독을 전용한 것인데 그 중에서 1점의 독은 독널로 전용하기 전에 이미 바닥 부분이 깨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용하면서 다른 독의 파편으로 이 깨진 부분을 막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8지구의 독널은 3점의 토기를 이용하여 독널을 구성하고 있다. 동체의 대칭되는 부분을 미리 깨뜨린 자배기를 바닥을 위로 향한 채 뒤집어 놓은 후 2점의 독은 횡치하여 자배기의 깨진 부분에 구연부를 삽입한 형태의 독널무덤이다. 아울러 절반 가량이 파손된 2점의 자배기를 이용하여 공간이 생긴 부분을 덮고 있다.

송국리 유적에서 확인된 움무덤 중 개괄적이나마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은 71지구에서 발견된 2기이다. 2기 모두 나무널(木棺)의 존재여부는 확인 할 수 없으나, 무덤구덩이 내부의 매장 주체로서 나무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중에서 1호 움무덤은 움의 중심부에 2점의 토기와 1점의 쇠손칼(鐵刀子)이 부장되어 있었는데, 피장자의 머리나 발쪽이 아니라 가슴이나 허리 부분에 부장품이 매납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2호 움무덤의 경우는 부장된 큰독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움무덤의 부장품과는 다르다는 점에서는 움무덤이 아니라 독널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즉 무덤구덩이를 파고, 큰독을 널로 횡치하였던 것이 후대의 지형 삭평이나 교란으로 인하여 큰독의 윗부분이 없어지고, 바닥 쪽의 파편만이 남아서 발굴당시에는 움무덤의 부장품으로 오인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부인 할 수 없다. 아니면 큰독이 나무널을 고정시키기 위한 시설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국리 유적 [扶餘 松菊里 遺蹟] (고고학사전, 2001.12,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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