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3-06-18 16:15:16         조회 - 10838

 

둘레 2,200m, 사적 제5호. 지정면적 98만3900㎡.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을 축조하고 다시 그 주위에 포곡식(包谷式) 산성을 축조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비루(泗沘樓)·영일루(迎日樓)·반월루(半月樓)·고란사(皐蘭寺)·낙화암(落花巖)과 사방의 문지(門址), 그리고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泗沘城)’·‘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泗沘)를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보다 먼저 500년(동성왕 22)경 이미 산봉우리에 테뫼형 산성이 축조되었다가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현재의 규모로 확장,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축성의 구체적 방법을 보면 성벽 안쪽의 흙을 파서 호(壕)를 만든 한편, 그 파낸 흙을 내벽에 보축(補築)하였다. 성의 바깥 벽면은 기반토(基盤土)를 마치 판축(板築)하듯이 황색사질토와 적색점질토를 겹겹이 다져놓았고,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고 흙을 덮었다.

이런 방식으로 축조된 산성의 입지는 경사면이어서 원래의 경사도보다도 더욱 가파른 경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이 산성의 아래 너비는 7m 가량이며 높이는 대략 4∼5m에 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창지와 영일루가 있는 부근의 표고는 전면 70m, 후면 90m의 등고선을 따라 둘레 1,500m의 성벽을 거의 토축으로 축조하였다.

1981년의 사비성 복원 때 토성의 단면을 자른 결과 대개 아래로부터 A·B·C·D의 4층을 확인하였다. 맨 아래층인 A층은 붉은색의 진흙으로 판축하여 하부를 축조하였는데 층의 높이는 1.9m이며, 토루 바깥면에는 토루를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4단의 석축이 남아 있다.

B층은 황갈색토층으로 북반부는 A층 위에 퇴적되었고, 남반부는 A층과 같이 아래서부터 쌓아올렸는데, 이는 A층을 고쳐쌓기 위해 B층이 축조되었음을 알려주며, 생토층으로부터 B층까지의 높이는 3.2m이다. 이곳에서는 연질의 백제시대 기와조각이 출토되었다.

C층은 황갈색사질토로 판축기법을 사용하여 두께 3∼6㎝로 축조되었는데, B층의 바깥쪽 경사면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수축된 것으로 보인다. 석재는 6합식(合式) 5단으로 쌓여 있는데 높이는 103㎝로 이 층에서도 B층과 같이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출토되었다.

맨 위층인 D층은 조선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부소산성이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축·개축을 거치며 사용된 이용편년을 증명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전체성벽의 높이는 내면의 높이가 7.6m, 외면 높이가 3.4m, 너비는 8.6m이다.

한편,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표고 106m의 사비루 부근의 산봉우리 중심으로 약 700m의 테뫼형 산성이 있는데 50×50㎝, 70×60㎝의 백제시대 초석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이 산성은 위의 두 산성이 연결되어 백제시대의 독특한 복합식 산성양식을 하고 있다.

성안에는 동·서·남문지가 있으며, 북쪽의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북문과 수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문지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대형철제 자물쇠가 발견되어 문지였음을 입증해주고 있으며, 남문지에는 아직도 문주(門柱)를 받쳤던 초석 2개가 동서로 나란히 있다.

1978년 금강상수도사업 공사로 인하여 성벽의 단면이 드러났는데 성벽 내부는 잡석으로 적심석(積心石)을 넣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목책지(木柵址)와 수혈상(竪穴狀)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이 산성은 성안에 군창지와 건물지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단 유사시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는 비원으로서의 구실을 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사비천도 이후 백제 멸망시까지 국도의 중심산성으로서, 인근의 청산성(靑山城)·청마산성(靑馬山城) 등의 보조산성으로 왕도의 방어를 강화한 성곽발달사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부여부소산성 [扶餘扶蘇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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